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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시리즈를 적기 시작했던 것은 이 글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때의 순간들, 감정들, 그리고 우리의 생각들까지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쉽게 할 수 있는 경험도 아닐 뿐더러, 잊고 싶지 않기도 했다.

7주차 병원 방문이 끝난 후, 다음 병원 예약은 또 일주일에서 하루 늦춰서 했다. 역시 우리 애기들에게 하루라도 시간을 더 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우리 애가 똑똑한데 놀기를 좋아해서 그런 거에요! 막상 하면 잘할 애라구요!!
대단이 대박이도 잘 클 수 있는데 우리가 너무 조급해서 그런 거야! 느긋하게 기다려주자구!

마음 먹은 것과 다르게 7주차에서 8주차로 가는 일주일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그래도 미리 계획했던 화담숲의 단풍 구경으로 태교 여행도 하고, 아내가 먹고 싶어하던 김치찜 잘하는 곳도 찾아서 든든하게 먹으며 행복한 주말을 보냈다.

아름다운 화담숲의 단풍

그리고 어느새 돌아온 대망의 초음파실 앞.
5주차부터 시작해 벌써 4주 연속 방문.
이제 익숙하게 발렛을 맡기고 접수를 하고 주변 산모, 보호자들을 관찰하는 여유가 생겼다.
저 사람은 이제 임신 확인 받으러 왔나봐.
신병이네 신병ㅋㅋ
오 저 분은 35주차 라는데..?
그러다 아내는 순서가 되어 초음파실로 들어가고 나는 혼자 시간의 덫에 빠졌다.
초음파실 내에서 소리 하나만 들려도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아내가 먼저 나왔다.
들어오래
불안한 마음으로 들어간 상담실에서 선생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해주셨다.

여전히 하나의 아기집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심장소리가 들리던 아기는 더 느려졌어요.
또, 작아지기도 했구요. 이는 자연 유산으로 가는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상상했던 일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막상 닥치면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아무 감정도 들지 않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지?
우리 둘은 그렇게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듯 했으나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딱 그 때 한 번이었다. 그 이후로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한 번 쏟아낸 이후 빠르게 이성을 되찾았다.
유산된 태아가 자연적으로 배출될 수도 있지만, 그럴 기미가 없다면 소파술을 통해 배출시켜야 한다. 빠르게 배출될 수록 산모의 컨디션 회복에 도움이 되고, 감정을 추스리고 다음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참고로, 12주 내 유산될 확률을 통계학적으로 대략 12~15% 정도이다.
자연 유산은 질병이나 유전병이 아니라 태아가 생존이 가능한 시기가 되기 전에 유전자 문제 등으로 임신 초기에 유산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자연 유산 내에도 여러 케이스가 있으나, 심장이 생기지 않은 아이는 계류 유산으로 태아가 보이지 않은 상태로 임신이 종료되는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다음 주에 최종적으로 다시 방문해서 초음파를 보고 같은 상황일 때 수술 일정을 잡거나, 현 상황에서 바로 수술 일정을 잡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우선은 한 번 더 와서 보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수납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른 선생님 방에서 우리를 부르더라.
혹시나 하는 우리의 마음과 이를 아는 우리 담당 선생님의 마음으로 다른 선생님에게 크로스 체크를 받게 해주셨다.
허나,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지만 우리의 마음은 편해질 수 있었다.
이 병원,,, 믿을 만한데?

빠른 몸 회복을 위해서라도 빠른 수술 일정을 잡고자 채혈, 소변 검사,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귀가하였다.
아내가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방사선과에 가 있는 동안, 무심코 열었던 휴대폰 화면에서 습관적으로 베이비 빌리를 눌렀다.
아까 아내가 흘렸던 눈물이 이거구나.
지난 한 달 간 내가 출퇴근하며 상상했던 대단이, 대박이 와의 미래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눈물이 흘렀다.
잠시만 안녕이야.
어차피 우린 다시 만나게 되어 있는데 조금 미뤄졌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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